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보는 ‘北 미사일 발사 이후’
안성규·김수정 기자 sujeong@joongang.co.kr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가 임박하면서 국제사회의 ‘북한 다루기 게임’이 다시 시작됐다. 1994년 제1차 북핵 위기, 98년 대포동 미사일 발사, 2006년 핵실험 이후 반복돼 온 외교 패턴이다. 2009년 3월 한국 정부는 어떤 자세를 취할까. 한국 외교의 사령탑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을 26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 장관 집무실에서 만났다.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북한이 치러야 할 대가는 반드시 있다”고 말했다. 이미 미국 뉴욕에서 유엔 차원의 대응 논의가 시작됐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과거 수차례 그랬듯 국제사회가 북한에 페널티를 준 다음에는 북·미 미사일 발사 유예협상과 같은 대화 모드로 국면이 전환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94년 김영삼 정부 시절 북·미 간 대화가 속도를 낼 때 조바심을 내던 한국의 상황을 떠올린다. 유 장관은 “한국과 북한이 미국을 놓고 경쟁하는 게 아니고 한·미가 함께 북한 문제를 관리하는 차원이기 때문에 한국이 미·북 간 관계 진전을 불안해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94년처럼 북·미 간 합의에 남북대화 진전을 조건으로 담는 방안을 고려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도 “그렇게 협소하게 생각할 일은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시각”이라고 답했다.
-북한이 로켓 발사와 관련해 “유엔 안보리에서 단 한마디라도 비난하는 문건을 내면 그 순간부터 6자회담은 없어질 것”이라고 발표했는데.
“2006년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한 뒤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안 1718호에는 ‘9·19 공동성명을 준수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북한이 6자회담에 성실히 임하라는 뜻이다. 북한의 로켓 발사는 그 자체로 안보리 결의안 위반이다. 여기에 6자회담까지 안 하겠다는 것은 안보리에 대한 정면 도전이자 결의안에 대한 이중의 위반이다.”
-최근엔 발사 저지보다 추후 대응책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다.
“북한이 4~8일 발사한다고 얘기했고 궤적까지 국제기구에 통보했다. 의지가 있다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액체연료를 주입하면 며칠 뒤 쏠 것이다. 오래 두면 연료저장 탱크가 부식한다. 저지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사후 대처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북한이 로켓 발사를 하면 국제사회는 어떻게 대응할까.
“결의안 1718호에는 각국이 어떤 제재를 취할 것인지를 제재위원회에 보고하게 돼 있다. 우리도 일본도 제출했다. 그런데 북한의 핵 포기를 다루는 6자회담에 북한이 참여하고 회담이 지속되면서 이행이 정지된 것이다. 이번에 북한이 로켓을 발사한 뒤 다시 제재 모드로 들어가는 것은 상식적이다. 다소간 냉각기는 필요하지만 북한 핵문제를 다루는 6자회담을 재개하기 위한 방안을 미국이나 중국도 모색하게 될 것이다. ”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가진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에서의 대북 제재에 미온적이지 않은가.
“단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중국과 러시아, 미국·일본·한국 등 6자회담에 참여한 5자가 합의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만들어 내는 게 중요하다. 이미 유엔에서 5개국 대사가 이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과민하게 대응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안보리 결의를 위반했는데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지나갈 수는 없는 것이다. 문제는 페널티의 수준인데 북의 위협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한국과 일본은 아무래도 강도가 높다. 미국은 6자회담을 끌어 가야 하는 입장이어서 대화 쪽에 모드가 실려 있다. 중국· 러시아는 전통적인 북한과의 관계 때문에 쿨(cool)하다. 5개 나라의 공동인식에 기반한 합당한 유엔의 조치가 나올 것이다.”
-결국 98년 1차 미사일 위기 때처럼 북·미 간에 미사일 발사유예(모라토리엄) 협상으로 흘러가는 것 아닌가.
“그렇게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북한의 국제사회 신용도에는 또 한 장의 옐로카드 가 추가되는 것이다.”
-미사일 발사 뒤 일정 기간이 지나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북 특사가 방북한다고 보나.
“대화를 안 할 순 없다.”
-지난번 보즈워스 특사가 방한했을 때 방북 의지가 강했나.
“평양으로 갈 준비까지 하고 왔다. 하지만 북한 쪽에서 응답이 없었다.”
-보즈워스는 북한이 오라고만 하면 간다는 입장인가.
“조건이 있다. 보즈워스도 뭔가 얻어낼 게 있어야 갈 것 아닌가. 조건은 미국 측이 북한에 얘기한 것이어서 내가 밝힐 수는 없다.”
-북한이 위협하고 도발하면 결국 보상을 해 주는 과거 패턴이 반복되는 것 아닌가.
“미국도 딜레마에 빠져 있다. 98년 8월 30일 대포동 미사일을 쏜 뒤 (포괄적 대북정책을 담은) ‘페리 프로세스’가 시작됐다. 2006년 핵실험 이후에도 미국은 그동안 거부해 온 양자회담을 했다. 아이로니컬한 현실이다. 북한의 이번 행동도 그런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일 수 있다. 국제사회의 외교·역학관계는 하나의 정형으로만 보기 힘든 점이 있다. 그렇다고 오늘 로켓을 발사했는데, 당장 내일 대화한다고 할 수는 없다. 북한도 페널티를 받아야 한다.”
-북·미 사이에 진전이 있을 때 남북 관계의 긴장은 오히려 높아질 수 있을 텐데.
“북한은 늘 그렇게 해왔다.”
-북·미 간 진전을 한국이 덜 예민하게 봐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미국이 북한과 협상하고 미·북 관계를 개선하려는 이유를 보자. 사상이나 철학·가치를 공유해서도, 경제적 이득이 있어서도 아니다. 목적이 있다. 미사일과 핵, 대량살상무기(WMD), 인권,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것이다. 미국과 우리 한국의 목적이 같다. 우리가 미·북 간 관계 진전에 불안해하고 긴장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장관께서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가입하는 것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북한의 미사일 개발 능력을 억제하는 유일하고도 실효적인 수단은 PSI다. 북한이 미사일이나 핵물질을 밖으로 보내는 것은 물론 밖에서 부품을 들여가는 것을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국제사회의 중심 이슈는 민주주의와 인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비확산과 테러 문제, 기후변화, 식량안보가 부각되고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테러와 대량살상무기 문제다. 여기에 동참하지 않은 채 한국이 글로벌 코리아를 지향하고 국가브랜드 가치를 높이려고 하는 게 쉽겠는가. 그렇게 갈 수밖에 없는
흐름이 있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든 안 하든 우리는 가입을 검토한다는 얘기로 들린다.
“이번 발사가 하나의 계기가 된다는 말이다.”
-발사하지 않으면 카드로 남을 수 있다는 말인지.
“그럴 수 있다.”
-PSI 가입 문제는 민감하다. 우리 사회의 이념갈등을 각오하고 추진할 수 있나.
“우리 사회가 PSI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불필요하게 이념적으로 갈라져 있다. 많은 이들이 공해상에서 북한 선박을 임검하고 수색해 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하는데, 그것이 아니다. 지난 6년 동안 다섯 건의 적발 케이스가 있었다. 회원국 간 정보 교환을 통해 자국 항구에서 환적할 때 수색을 통해 대량살상무기 관련 물질을 적발한 것이다. 국제법에 따라서 한다. 영해에 들어왔을 때 한다. 당장 충돌을 일으키는 것처럼 확장 해석되고 있다. 만약 북한이 PSI에 가입하면 공해상에서 북한 배를 임검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멤버가 아니다. 국제법으로 할 수가 없다.”
-북한이 최근 미국의 식량 지원을 거부했다. 배경은 뭔가.
“결국은 내부체제 단속의 목적이 아니겠나. 식량이 주민들에게 배급되는 현황을 모니터하는 문제는 미국으로선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다. 미국은 한국말 하는 모니터링 요원의 일정 수를 꼭 써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북한은 안 된다는 것이다. 합의됐던 문제인데, 세부 사항으로 들어가면서 북한이 거부했다.”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의 한반도 밑그림이 아직 그려지지 않은 것 같다.
“정책 구상에 들어간 지 한 달이 안 됐다. 아직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도 임명되지 않은 상태다. 5월 말이 돼야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 구상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행정부가 동맹국들의 아프간 지원을 강하게 거론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할 예정인가.
“확정된 바 없다. 현 단계에서 맞지 않는 얘기다. 우선 우리 정부는 바그람 기지 내 병원 운영, 직업훈련교관 파견, 농업과 직업훈련 분야에 지원을 하면서 그 다음 단계를 검토해 나갈 것이다.”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여기자 2명의 상황은 어떤가.
“북한이 오래 끌어서 이득 될 게 없는 이슈다. 언제라고 얘기할 순 없지만 미사일 발사와 석방 일정을 연계해 놓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북한은 미국 측에 ‘여기자들의 신변이 안전하고 잘 있다’는 정보를 전달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때부터 외교 수장으로 일해 왔다. 지난 한 해를 평가한다면.
“지난 1년은 대외관계의 기초를 닦은 해였다. 한·미 관계 강화를 중심으로 해 주변 4강과의 외교를 다졌다. 일본 도야코에서 열린 G8 정상회의와 금융위기가 터진 뒤 열린 G20 정상회의에 한국이 참석해 나름의 역할을 했다. 올해는 우리가 속한 아시아로 시야를 넓히고 있다. 내년엔 중동·아프리카 국가들과 관계를 강화해 글로벌 한국의 이미지를 부각하려 한다.”
-쿠바·시리아와의 외교 관계는 언제 수립하나.
“우리와 외교관계가 없는 나라는 사실상 두 나라밖에 없다. 시리아의 경우 지난해 9월 관계개선 의사를 공식 전달했고, 미국에도 이를 전했다. 쿠바·시리아는 그동안 북한과의 끈끈한 관계 때문에 소극적이었다. 잘 되면 올해 안에 수교도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서둘러 하진 않겠다는 입장이다.”
-평소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나.
“틈만 나면 산에 오른다.”(유 장관은 서울고 재학 시절부터 산악반에서 활동한 등산 매니어다)
출 처: 중앙선데이 제107호 09/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