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종락 외교통상부 제1차관
최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가 임박한 것으로 보도되면서 우리나라의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 정식 참여 문제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달 30일 북한 노동당 외곽단체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은 남측이 PSI에 참가한다면 이를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북한의 이러한 반응은 대량파괴무기(WMD) 및 미사일의 확산 방지를 위한 국제적 협력을 제고한다는 PSI의 취지를 잘못 인식해서 나온 것이다.
PSI는 현재 아시아·유럽·아프리카 등 모든 대륙에서 94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범세계적인 협력체제다. 6자회담 참여국인 미국·러시아·일본도 참여하고 있으며, 북한이 지금까지 이들 나라를 상대로 문제를 제기한 적도 없다. PSI는 특정 국가만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다. 어느 나라든 국제협약과 유엔안보리 결의를 위배하는 WMD·미사일의 불법거래를 하면 참여국 간 협력을 통해 그것을 차단하려는 것이다. 특정 국가에 왕래하는 모든 선박의 출입을 금지하는 해상 봉쇄와는 전혀 다르다.
PSI 참여국들은 국내법과 국제법에 따라 자발적으로 PSI 활동을 하게 된다. 혐의가 있는 외국 선박에 대해 승선·검색 등의 조치를 취하는 PSI 활동은 자국 영해에서만 이루어진다. 공해상에서는 외국선박 기국(flag state)의 동의 없이는 이러한 조치를 취할 수 없다. 최근 PSI 활동은 운항 중 물리적 차단보다는 정보 교환, 항만에서의 검색, 외교적 협력 등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2003년 10월 미국은 원심분리기를 싣고 리비아로 향하던 독일 선박을 인근 이탈리아 항구로 회항시켜 검색을 받게 한 적이 있다. 미국이 2008년 5월에 발표한 5건의 PSI 사례도 물리적 차단이 아닌, 수출 통제와 항구에서의 검색을 통한 조치였다.
우리나라가 PSI에 정식 가입할 경우 한반도 주변 수역에서의 상황은 어떠할 것인가? 한반도에서는 정전협정과 2005년 8월 발효된 남북해운합의서가 있다. 북한 선박이 무기수송과 같은 금지된 행위를 하는 경우에는 우리 당국이 승선·검색을 할 수 있다. 한국이 PSI에 정식으로 참여한다고 해서 북한 선박에 대해 더 엄격한 조치를 취하는 것은 아니다. PSI가 남북해운합의서의 적용을 배제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는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국제사회의 공동 관심사인 WMD·미사일 확산 방지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 동시에 여타 PSI 참여국들과 WMD·미사일 불법거래에 관련된 정보를 교환하고, 전문지식과 경험을 쌓아감으로써 실질적인 국익을 도모해야 한다.
출 처: 조선일보 0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