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길수 주국제민간항공기구대표부(ICAO) 대사
전자여권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2년여의 준비를 거쳐 지난 3월31일 외교관여권과 관용여권을 전자여권으로 발급하기 시작했으며, 여권사무 대행기관의 확대로 8월쯤에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전자여권을 발급할 예정이다.
전자여권 도입의 의의는 국제 신분증으로서 여권의 보안성 강화에 있다. 최근 세계화의 진전으로 국가 간 인적 교류의 급속한 증가에 따라 불법 체류 및 국제 범죄 등도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전 세계 190개 회원국이 참여하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여권의 보안성을 강화하려고 여권 표준 개선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1995년 여권 정보 저장매체를 연구할 필요성이 제기된 이래 ICAO를 중심으로 세계적 전문가들이 수년간 기술적으로 연구해 왔다. 마침내 2005년 전자여권 도입이 ICAO 이사회에서 권고되고, 2006년에는 전자여권 관련 표준을 집대성한 문서인 ‘ICAO Doc 9303 제6판’이 간행됐다. 올해 4월 현재 주요 선진국을 포함한 40여개국이 전자여권 발급을 시작한 상태다.
우리 정부도 여권의 국제적 신뢰도를 향상시키려고 지난 2년간 전자여권 도입을 준비해 왔다. 특히 ICAO가 여권 위·변조 식별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적극 추진하는 사업인 ICAO 공개키 디렉토리 이사회에 아홉 번째 회원국으로 참여함으로써 전자여권 관련 국제 논의에 동참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전자여권이란 단거리 무선 교신이 가능한 ISO 14443 표준의 비접촉식 칩을 내장한 여권을 말한다. 전자여권에는 본인 확인 강화를 위해 사진 이외의 2차적 바이오 인식정보인 홍채와 지문을 수록할 수 있는데, 바이오 인식정보 도입국들은 모두 지문을 채택했다. 지금까지 독일,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 4개국이 지문 수록을 개시했으며,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내년 6월 말까지는 지문 수록 전자여권을 발급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2010년부터는 전자여권 칩에 지문을 수록할 예정이다.
전자여권에 수록되는 정보는 여권 보안성 향상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즉, 동일한 정보가 신원정보면과 칩에 이중으로 저장되고, 또한 칩에는 복제 및 조작을 방지하는 강력한 보안기술이 적용되므로 신원정보면과 칩을 동시에 위·변조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고 할 수 있다.
2010년부터 지문이 수록된 전자여권이 발급되면 다른 사람이 여권을 도용하는 것 역시 어려우므로 여권 보안성이 한층 향상될 것이다. 일각에서는 신용정보, 범죄기록, 혈액형 등의 추가적 정보가 칩에 수록될 것이라는 추측이 제기됐으나 이것은 전자여권의 표준이나 여권 보안성 강화라는 전자여권 도입의 취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데 따른 오해이며, 전혀 사실이 아니다.
전자여권을 도입해 우리 여권에 대한 국제적 신뢰도를 높여 국민들로 하여금 해외여행을 편리하게 하고, 여권 보안성을 증대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적극 동참함으로써 국제민간항공 분야에서의 우리 위상이 강화되는 기반이 형성되기를 기대해 본다.
출 처: 세계일보 08/5/7